하늘 궁녀의 길을 택한 성녀 – 김올리바 줄리에타의 삶과 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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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궁녀의 길을 택한 성녀 – 김올리바 줄리에타의 삶과 순교

초록 저고리와 푸른 치마를 입고 묵주를 든 조선시대 궁녀 복장의 가톨릭 성녀 초상화.
성녀 김올리바 줄리에타 – 궁녀의 길 대신 하늘의 길을 선택한 조선의 순교자.

조선 여인의 이름으로 천국의 신부가 되다

1800년대 초반, 조선은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한편에서는 서학(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거세게 이어졌고, 한편으로는 조선의 여성들이 제한된 삶의 틀 안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던 시절이었죠. 바로 이 시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난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세례명은 ‘올리바’(Olivia, 혹은 올리에타 Julietta), 본명은 김씨 성을 가진 조선 여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신실한 신앙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란 그녀는 신자로서의 정체성을 또렷이 하며, 세상과 구별된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이름 없는 시골 처녀였던 그녀는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가 부모의 뜻에 따라 혼인을 하게 되지만, 이는 그녀가 걸으려던 길이 아니었습니다. 올리바는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하고 싶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혼을 거부한 대가로 머리카락을 밀며 마리텔(독신 여신도)의 삶을 택합니다. 당시 여자가 혼인을 거부하는 것은 커다란 결단이었고, 사회적 지탄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궁녀가 된 올리바, 신앙을 잃지 않은 황실의 종

1801년, 조선 전체를 뒤흔든 신유박해가 시작되었고, 많은 신자들이 붙잡히고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김씨 집안 역시 박해를 피해 고향으로 피신했지만, 올리바는 달랐습니다. 오히려 집을 빠져나와 왕궁의 나인이 되는 길을 택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종의 삶이었지만, 그녀는 하느님의 종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궁궐에서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왕의 시중을 들고, 조정의 시선을 피하며 신앙을 지키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올리바는 무려 10년 동안 궁중에 머물며 동료 나인들에게 천주교 신앙을 전했고, 끊임없이 기도하고 복음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가난하고 지친 여인들을 돕고, 비밀리에 신자들과 연결을 맺으며 신앙 공동체를 이어갔습니다. 마침내 궁에서 나온 그녀는 서울의 한 신자 집에서 조용히 살며, 더욱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에 헌신합니다.

 


"죽을지언정 죄를 짓지 않으리라" – 믿음의 결단

그녀는 단순히 경건한 신자가 아니었습니다. 강한 의지와 이성을 갖춘 여성이었습니다. 박해가 심해질수록 그녀는 더욱 신심을 불태웠습니다. 사람들이 그녀를 가리켜 말하길, “올리바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아무 죄도 짓지 않을 여인이다.” 그녀의 삶은 신자들 사이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었고, 누구보다 굳건한 신념의 표본으로 여겨졌습니다.

기해박해(1839년)가 닥쳤을 때, 올리바는 체포되어 형조로 끌려갑니다. 혹독한 고문이 이어졌지만 그녀는 결코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내 천주를 배반할 수 없다”며 눈물로 신앙을 고백합니다. 함께 고문을 받은 이들이 절망에 빠져 신앙을 포기하자, 그녀는 “매를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배반할 자는 사람이 아닌 하느님이다.”라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포악한 포졸들은 그녀를 구슬려 자백을 받아내려 했지만, 올리바는 끝내 그 어떤 동료 신자도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죽는 길밖에는 없다”고 포기하듯 말하는 이들에게 그녀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시작입니다.”

 


순교자의 유산 – 하늘에서 받은 인호

올리바는 끝내 서소문 밖 형장에서 교수형으로 생을 마칩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은 평온했습니다. 마치 천국의 신부가 되어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듯, 숨결은 가늘고도 단호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겨우 서른세 살, 그리스도의 나이였습니다.

올리바의 순교는 신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었습니다. 함께 갇혀있던 신자들은 그녀를 ‘하늘의 여왕처럼 품위 있는 순교자’라 불렀고, 그녀의 순교 이야기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특히 여성 신자들에게 그녀는 큰 위로이자 믿음의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궁녀 올리바’는 조선 천주교 여성 순교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복녀에서 성녀로 – 교회가 인정한 조선의 하늘 신부

올리바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됩니다. 그리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집전 아래, 성녀로 시성됩니다. 이날 그녀와 함께 시성된 103위 한국 순교성인 가운데, 올리바는 조선 궁중에서 신앙을 지킨 유일한 여성 성인이었습니다.

그녀의 삶은 단순히 믿음을 지키는 수준이 아니라, 시대를 거슬러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한 용기 있는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오직 하느님께 헌신한 그 결정은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메시지를 줍니다.


[마무리 묵상] 조선의 작은 별, 성녀 김올리바 줄리에타

성녀 김올리바 줄리에타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진실로 찬란한 별이었습니다. 그녀는 ‘궁의 여종’이 아닌 ‘하느님의 딸’로서, 시대의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신앙의 등불을 밝혔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녀의 이름을 다시 불러본다면, 그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우리도 순결한 믿음으로 살아가려는 다짐이 될 것입니다.

하늘의 신부, 성녀 올리바여, 우리도 당신처럼 고난 속에서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세상의 유혹 속에서도 주님을 따를 수 있도록 전구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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