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두산 성지, 서울 한복판에 이런 역사가 숨어있었다니

서울 마포구 한강변, 합정역 근처. 홍대, 망원, 합정 이런 트렌디한 동네들을 걷다 보면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장소가 하나 있다. 바로 절두산 성지다.

처음 이곳의 이름을 들었을 때, 나는 솔직히 좀 섬뜩했다.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이름이 뜻하는 건 너무도 직설적이었다. '머리를 자른 산'이라니.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얼마나 비극적일지 짐작이 갔다.

절두산 성지,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1866년, 조선 후기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시절.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중에서도 절두산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다.

이곳은 바로 순교자들의 목이 베여 한강에 던져졌던 처형장이었다. 한강변의 돌출된 절벽 지형 때문에 조선 정부는 이곳을 박해 장소로 삼았다. 무참하게 목숨을 잃은 이들의 숫자만 수천 명에 달한다고 한다.

천주교 박해가 시작된 건 생각보다 오래전 일이다. 이미 1801년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조선 정부는 서학(천주교)을 '사악한 종교'로 규정했다. 외세와 통하는 종교, 조상 숭배를 부정하는 종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탄압의 정점이 바로 병인박해였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오면서 박해는 더욱 극심해졌고, 그 희생자들의 피가 스며든 곳이 바로 이 절두산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절두산 성지를 처음 방문하면 너무 평화롭고 조용해서 과거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잘 정돈된 산책로, 푸르른 나무,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한강 뷰.

하지만 조금만 둘러보면 곳곳에 숨어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당시 박해 당시 사용되었던 고문 도구, 성물,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전시물이 가득하다. 사진 자료나 영상 자료도 있어 생각보다 시간이 훌쩍 간다.

야외 공간에는 거대한 순교자 조각상이 있다. 순교자의 고통스러운 표정, 끊어진 사슬 같은 상징물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하거나 묵상할 수 있는 성당도 마련되어 있다.

이건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공간이다. 조용히 한강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장소. 역사를 배운 뒤 잠시 자연을 마주하며 숨을 고를 수 있다.

절두산 성지는 조용히 걷고 생각하기 좋은 곳이다. 그냥 힐링 스팟으로도, 역사 공부하러 가기에도, 종교를 떠나 인간 정신과 신념에 대해 생각해보기에도 좋은 공간.

서울 한복판, 이런 특별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가 꼭 한 번쯤은 가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