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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를 모신 고통 속에서 피어난 성덕 – 성녀 김업이 막달레나동정의 삶을 꿈꾸던 소녀, 부모의 뜻에 따라 출가하다조선의 한 신자 집안에서 태어난 김업이 막달레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동정의 삶, 곧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진 삶을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여성에게 동정생활은 매우 드문 일이었고, 부모님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던 그녀는 결국 어느 교우와 결혼하게 됩니다. 그녀가 원치 않았던 길이었지만, 순명과 복종의 정신으로 그 길을 받아들였습니다.세월이 흘러 중년에 접어든 김업이 성녀는 삶의 큰 시련을 맞습니다. 남편과 자녀를 모두 잃는 아픔을 겪고, 혼자가 된 그녀는 서울 근교 애고개(지금의 서울 마포구 일대)로 거처를 옮겨 시어머니와 함께 살게 됩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허름한 집을 짓고, 매..
성녀 김노사 로사의 믿음과 순교 – 고난 속에서 피어난 신앙의 꽃1. 낯선 길 위의 회심 – 서울 외곽의 한 여인이 천주교인이 되기까지서울의 어느 외곽,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난 김노사 로사는 처음엔 성교회(천주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채 성장하고, 결혼 생활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그녀의 삶은 큰 전환점을 맞습니다. 외로움 속에서 그녀는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고, 신앙을 받아들인 후에는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이어갔습니다.그녀는 교우 친척과 함께 살며 자연스럽게 교회 활동과 수계 생활을 접했고, 이를 통해 신앙의 깊은 기쁨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에 눈을 뜬 로사는 자신이 얻은 은총을 나누고자 다른 사람들, 특히 어머니와 오라비에게도 보배로운 진리를 전하려 애썼습니..
신앙을 품은 어머니, 성녀 권희 바르바라 – 순교의 가문이 남긴 위대한 유산1. 외교인의 딸에서 천주교 신앙인으로성녀 권희 바르바라는 1794년경, 조선 후기에 외교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외교인은 중국 사행과 같은 외교 업무에 종사하던 계층으로, 상대적으로 외래 문물과 사상에 대한 개방적 태도를 가진 집안이었습니다. 그녀는 비교적 안정된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결혼 후 인생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남편과 함께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고, 부부는 신앙을 받아들이며 신앙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이 당시 조선은 가톨릭에 대해 박해적 태도를 보이던 시기로, 신자들은 비밀리에 신앙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권희 바르바라와 그녀의 남편은 단지 신앙을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집을 ..
성 권득인 베드로: 가난 속 신앙을 지킨 영혼, 한국 천주교의 숨은 별 1. 힘겨운 삶 속에서도 빛난 신앙의 씨앗성 권득인 베드로는 1805년경 서울 도성 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집안은 대대로 천주교 신앙을 지켜온 가정이었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16세가 되던 해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믿음은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성인은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지켜나갔습니다.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권득인 베드로는 성실하게 소규모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결혼 후에도 부인과 함께 신앙생활을 이어가며 매일 밤낮으로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생계를 위해 십자가와 성패를 만들어 파는 일도..
103위 한국 천주교 순교 성인, 김효임 골롬바 성녀의 삶과 신앙 1. 조선 땅에 피어난 신앙의 꽃, 103위 성인의 의미한국 천주교회는 수많은 순교자의 피 위에 세워졌습니다. 조선 시대는 유교적 질서와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이는 데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천주교 신앙은 박해의 대상이 되었고,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이들이 체포되고 고문당하며 목숨을 잃었습니다.1984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의 순교자 103위를 시성하셨습니다. 이분들은 모두 조선 후기 박해 시대에 신앙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이며, 이들의 삶은 오늘날까지도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줍니다.그 가운데에서도 김효임 골롬바 성녀는 여성..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중 한 분, 로랑조제프 마리위스 앵베르 주교 이야기 앵베르 주교(Laurent-Joseph-Marius Imbert, 1797년 4월 15일 ~ 1839년 9월 21일)는 한국 천주교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조선 시대 박해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외국인 선교사이며, 103위 한국 천주교 성인 중 한 명입니다.1. 프랑스 마리냥에서 태어난 가난한 농부의 아들앵베르 주교는 1797년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마리냥(Marignane)**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자란 집안은 가난했지만, 그는 어려서부터 신앙심이 깊고 학구열이 높은 소년이었습니다. 이러한 성품은 훗날 그가 선교사로 헌신하게 되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죠.2. 외방전교회 입회와 사제로서의 첫걸음그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