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을 지키던 여인, 성녀 루치나 – 순교자를 위한 어머니의 사랑
1. 이야기처럼 시작하며 – ‘루치나’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성녀 루치나(Lucina). 이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이름은 낯설지만, 그녀의 삶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리스도교의 초창기 로마에서 은은한 빛을 밝혔던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로마의 박해가 한창이던 1세기, 사도들과 그 제자들이 신앙을 전하다 감옥에 갇히고 순교하던 그때, 루치나는 이름 없는 순교자 곁에서 조용히 무너져가는 몸을 감싸 안고 눈물로 기도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자리, 바로 그곳에서 그녀는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내고 있었습니다.
2. 귀족 여인에서 ‘그리스도의 자비’로 – 사도들의 제자, 루치나
성녀 루치나는 전승에 따르면 로마의 귀족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녀는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로마에서 복음을 전할 당시, 그들과 가까이서 교회의 성장에 기여한 제자였습니다. 재산도, 지위도, 명예도 가진 여인이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감옥에 갇힌 이들’과 ‘버려진 순교자들’을 위해 아낌없이 썼습니다.
특히 박해로 인해 감옥에 수감된 그리스도인들을 방문하여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고, 음식을 전하며, 정신적으로도 지지하는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 시절, ‘기독교 신자와 접촉했다’는 이유 하나로 함께 처벌받던 시대였기에, 루치나의 선택은 곧 생명을 건 신앙 고백이었습니다.
3. 순교자들의 품이 된 여인 – ‘로마 순교록’ 속 그녀의 헌신
전례서인 《로마 순교록(Martyrologium Romanum)》에 따르면, 성녀 루치나는 단지 돕기만 한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순교한 성인들의 시신을 정성스레 수습하여 자신의 가족 묘지인 지하 묘지(카타콤바)에 안장하는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 묻은 시신을 안고 어둠 속 지하로 내려가는 그 발걸음에는 눈물과 기도가 함께 담겼습니다.
특히 전승에 따르면 성녀 루치나는 사도 베드로가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한 후, 그의 유해를 거두어 몰래 장사 지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의 묘지에는 베드로를 비롯해 여러 순교자의 유해가 함께 안치되었으며, 이는 훗날 성 베드로 대성당과 연결되는 전례적 흐름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처럼 그녀는 순교자들의 어머니, 박해받는 신자들의 동반자로서 기억됩니다.
4. 교회 전례에서의 위치 – 6월 30일, 그녀의 이름이 빛나는 날
6월 30일은 오랫동안 ‘성녀 루치나’를 기념하는 축일로 지켜졌습니다. 《로마 순교록》은 매년 이날, 그녀의 헌신과 자비를 기억하며 성녀를 공경하였고, 일부 교회에서는 루치나를 순교자와 같은 반열로 존중해왔습니다.
하지만 2004년, 성인력 개정이 이루어지면서 그녀의 이름은 공식 전례력에서는 제외되었고, 오늘날에는 일부 전통주의 공동체나 로마 본토에서만 기념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교회는 그녀의 이름을 ‘순교자들과 함께한 자비의 증인’으로 기억합니다. 마치 베로니카가 십자가의 길에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린 것처럼, 루치나는 순교자들의 피 흘린 얼굴을 안아주던 존재였던 것입니다.
5.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성녀 루치나의 신앙
성녀 루치나는 박해 시대의 ‘숨겨진 성녀’였습니다. 그녀는 세상적인 화려함보다 신앙의 빛을 선택했고, 다른 이의 고통을 자신의 기도로 껴안는 이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외적인 박해보다 내적인 냉소와 무관심 속에서 고립되기 쉽습니다. 그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루치나처럼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친절, 조용한 기도, 그리고 외로운 이들을 찾아가는 용기를 배워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요양보호사, 간병인, 봉사자, 사목회 등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들에게 루치나는 신앙의 롤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인내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 그들 안에 성녀 루치나의 그림자가 살아있습니다.
6. 마무리하며 – 루치나, 오늘 우리의 이웃 속에 살아있는 성녀
성녀 루치나는 복음의 빛을 등불처럼 품고 조용히 걸어갔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감옥 속 그리스도인을 돌보았고, 순교자의 시신을 어루만졌으며, 자신의 삶을 오롯이 하느님께 내어 맡긴 참된 제자였습니다. 그녀의 축일인 6월 30일, 우리도 삶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사랑의 실천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조용한 헌신이야말로, 하느님의 가장 큰 기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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