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자들의 수호자, 성 카밀루스 데 렐리스 – 고통 속에서 피어난 자비의 성인
1. 어머니의 기도로 태어난 아이
1550년 5월 25일, 이탈리아 남부의 작은 마을 부키아니코(Bucchianico, 현재의 아브루초 주 키에티 지역)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카밀루스 데 렐리스(Camillo de Lellis). 당시 그의 어머니 카밀라 콤펠리 데 라우레토(Camilla Compelli de Laureto)는 이미 50세에 가까운 나이였기에, 이 아들의 탄생은 그 자체로 기적처럼 여겨졌습니다. 신심 깊은 어머니는 아들이 위대한 사제가 되기를 기도하며 기르려 했지만, 현실은 전혀 다른 길로 흐르게 됩니다.
카밀루스의 아버지는 프랑스 왕실 군대의 장교였고, 그는 아버지를 따라 전쟁터와 병영의 삶을 익숙하게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조기 사망과 방치된 성장 환경은 카밀루스를 거칠고 방황하는 삶으로 이끌었습니다.
2. 방황, 부상, 병원, 그리고 회심
청소년기 그는 노름과 도박에 빠졌고, 충동적으로 군 입대를 결심합니다. 그러나 오른쪽 다리에 생긴 심각한 상처로 인해 입대는 좌절됩니다. 절망 속에 로마의 산 자코모 병원(San Giacomo Hospital)을 찾아 치료를 받게 되는데, 이곳에서의 경험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게 됩니다.
병원에서 회복하는 동안 그는 조수로 일하면서 병자들의 고통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진심이 아닌 생활비를 위한 노동이었고, 그는 여전히 노름을 끊지 못한 채 점점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병상에서 죽음을 앞둔 병자의 고통을 눈으로 목격한 순간, 그는 내면 깊숙이 강한 충격을 받습니다. 사람답게 대우받지 못하는 병자들의 모습에서 그는 인간의 존엄성을 깨닫게 되었고, 자신의 삶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절감합니다. 이는 곧 회심의 시작이었습니다.
3. 병자들을 위한 수도회, 카밀리안회 창설
회심 이후, 그는 삶을 다시 세우기 위해 아푸리아(Apulia) 지역의 만프레도니아(Manfredonia)에 있는 카푸친회에서 일자리를 얻고 형제들과 함께 수도 생활을 체험합니다. 그러나 몸에 난 상처로 수도회 입회는 허락되지 않았고, 그는 다시 로마로 돌아가 병자 돌봄의 사도직에 헌신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병자들을 단순히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존중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점차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이 모여들었고, 1586년 교황 식스토 5세로부터 정식으로 ‘병자 시중 수도회’를 인가받게 됩니다. 훗날 이 수도회는 창립자의 이름을 따 ‘카밀리안회(Order of the Ministers of the Sick)’로 불리게 됩니다.
카밀리안회의 수도자들은 검은 수도복에 붉은 십자가를 새겨 입고, 전염병과 전쟁의 참혹한 현장에서 병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봉사했습니다. 실제로 성 카밀루스는 전염병이 창궐한 지역에서 두려움 없이 병자들 곁을 지켰고, 수많은 이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4. 성인의 마지막과 영원한 유산
성 카밀루스는 1614년 7월 14일, 64세의 나이로 선종하였습니다. 생의 마지막까지 병자들을 위한 삶을 살아간 그는, 마치 자신이 직접 병자의 육신이 된 듯한 삶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병자 안에서 그리스도를 보았고, 그들 곁에 머무르며 예수님을 섬긴다고 여겼습니다.
그의 유해는 로마의 ‘성 마리아 마조레 성당’ 인근에 안치되어 있으며, 그가 창설한 카밀리안회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병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사랑의 사도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1746년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였으며, 1886년에는 병자들과 병원, 간호사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습니다.
마무리하며 – 고통 속에서 피어난 치유의 꽃
성 카밀루스 데 렐리스의 생애는 인간의 나약함, 방황, 좌절, 그리고 회심과 헌신이라는 복합적인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그의 삶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선택한 의지의 여정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병자나 노약자, 혹은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과 마주할 때, 성 카밀루스의 삶을 기억한다면 우리 안에서도 작은 자비의 불씨가 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남긴 ‘붉은 십자가’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고통 위에 사랑으로 새겨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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