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성인: 신앙의 길을 걸어 순교의 꽃으로 피어난 삶
조선 시대 천주교 박해의 피비린내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의 불꽃을 지키며 순교로서 신앙을 증거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중 한 분입니다. 그의 삶은 단순한 개인의 종교적 열정을 넘어, 시대를 뛰어넘는 신앙의 모범으로 오늘날까지 우리 가슴 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진길 성인의 생애와 신앙 여정, 순교와 시복·시성 과정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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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진길 성인의 생애와 신앙의 눈뜸

유진길 성인은 1791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조선은 유교적 질서를 엄격히 유지하고 있었고, 새로운 종교인 천주교는 이단으로 간주되어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진길은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품었고, 성 아우구스티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며 천주교 신앙에 깊이 귀의했습니다.
그는 신앙을 단순한 교리나 지식이 아닌, 삶 전체로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신자 공동체 안에서 꾸준히 기도와 선행을 실천하며 모범이 되었고, 자신의 집을 비밀 교리소로 사용하여 다른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도왔습니다. 당시 천주교는 서학(西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신자들의 모임은 비밀리에 이루어졌고, 이를 도운 유진길 성인의 용기는 남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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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해박해와 순교의 길
1839년, 조선의 헌종 치하에서 대규모 박해인 ‘기해박해’가 일어났습니다. 이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체포되었고, 고문과 협박 속에서도 신앙을 저버리지 않아 처형당했습니다. 유진길 성인도 이 박해 속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체포된 그는 서소문 형조의 혹독한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하느님을 부인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굳게 믿었습니다. 결국 그는 1839년 9월 22일, 서울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당하며 순교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49세였습니다.
그의 순교는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은 고귀한 증언이었으며, 오늘날까지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영적인 유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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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회가 증언한 그의 삶 – 시복과 시성
유진길 성인의 순교는 시간이 흐른 뒤에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그의 삶과 죽음을 성인의 표양으로 삼아 교황청에 시복을 청원하였습니다. 그 결과,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습니다. 이는 유진길 성인의 신앙과 순교가 교회적으로 인정받은 뜻깊은 사건이었습니다.
이어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중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유진길 성인을 포함한 103위 한국 순교자들을 성인으로 시성하였습니다. 이는 한국 천주교 역사에 있어 가장 뜻깊은 순간 중 하나로 기록되며,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 안에서 순교 신앙의 나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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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유진길 성인의 삶은 단지 과거의 이야기로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는 신앙을 선택함으로써 모든 것을 걸었고,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진리를 따르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그 소중함을 인식하고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증거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참된 신앙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야 할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유진길 성인의 축일은 매년 9월 20일, 한국 103위 성인들의 공통 축일로 기념됩니다. 이날은 우리 모두가 그분들의 순교 정신을 기리며, 우리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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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름 없는 많은 신자들과 함께 한국 천주교의 뿌리를 지탱한 인물입니다. 그의 생애는 조선의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신앙의 열정과, 공동체를 향한 사랑,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충절의 상징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분의 삶을 본받아 세상 속에서 더욱 빛나는 신앙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