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착한 목자, 최양업 신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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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의 착한 목자, 최양업 신부님

최양업 신부님(1821년 3월 1일~1861년 6월 15일)은 한국 천주교회의 초창기를 이끌며 신앙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분입니다.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사제 서품을 받았으며, 박해 속에서도 묵묵히 신자들을 돌보셨습니다.

신앙의 씨앗을 키운 어린 시절

최양업 신부님은 충청도 진천에서 독실한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깊은 신앙심을 지니고 있었고, 1836년에는 김대건 신부님과 함께 마카오 유학길에 올라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유학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타국에서의 긴 시간 동안 가족을 그리워하며 공부를 이어갔고, 김대건 신부님이 먼저 사제가 되어 조선으로 돌아간 뒤에도 묵묵히 신학 수업을 계속하셨습니다.

드디어 1849년 4월 15일, 중국 상하이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조선으로 돌아와 본격적인 사목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조선을 누비며 신자들을 돌보다

그 시절 조선에서는 천주교 박해가 심했기 때문에 신자들은 숨어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최양업 신부님은 12년 동안 6,000km가 넘는 길을 걸으며 전국 곳곳의 신자들을 찾아가 성사를 집전하고 신앙을 전파하셨습니다.

신앙을 더욱 널리 퍼뜨리기 위해 직접 "성교요리"(천주교 교리서)를 저술하며 신자들이 쉽게 교리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때로는 변장을 하면서 박해를 피해 다니셨지만, 신자들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선종과 복자 선포

1861년, 끊임없는 여정과 험난한 생활로 인해 과로와 병환으로 쓰러지셨고, 경상도 문경에서 선종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신자들을 걱정하시며 "신자들을 잘 돌봐 달라"고 당부하셨다고 합니다.

그의 깊은 사랑과 헌신을 기려, 2021년 8월 21일 교황청으로부터 "복자"로 선포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신자들이 최양업 신부님의 시성(성인으로 추대되는 과정)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삶이 주는 의미

  • 온몸과 마음을 다해 신자들을 돌보신 착한 목자
  •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키고 가르침을 전파한 사제
  • 묵묵히 헌신하며 한국 천주교의 든든한 기둥이 된 분

지금도 많은 이들이 최양업 신부님의 삶을 본받으며 신앙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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