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남종삼 요한 성인의 생애와 순교, 그리고 믿음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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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남종삼 요한 성인의 생애와 순교, 그리고 믿음의 유산




한국 천주교 순교자 가운데 한 사람인 **남종삼 요한 성인(1817~1866)**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는 고위 관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끝내 순교를 택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신앙의 귀감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남종삼 성인의 생애, 천주교 입교 과정, 순교의 배경과 의의, 그리고 우리에게 남긴 교훈을 중심으로 자세히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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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종삼 요한 성인의 출생과 가정 배경

 

남종삼 성인은 1817년 충청도 충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본관은 의령(宜寧), 세례명은 요한이며, 자는 중오(重五), 호는 연파(煙波) 혹은 중재(重齋)로도 불렸습니다. 그는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천주교 신자인 남상교의 양자로 입양되어 제천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 남상교는 조선 남인 계열의 농학자로서 충주 지역에서 천주교 교리와 신앙을 실천하며 조용히 살아갔으며, 이러한 신앙적 환경은 남종삼 성인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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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과 급제와 조선 왕실에서의 활동

 

남종삼 성인은 22세이던 1838년(헌종 4년)에 과거 문과에 급제하였습니다. 이후 홍문관 교리, 영해현감 등으로 임명되었고, 철종 시대에는 승지(承旨)로서 조정에서 국왕을 보필하는 중책을 맡았습니다. 고종 초기에는 왕족 자제들의 교육을 맡았으며, 흥선대원군과도 깊은 친교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청렴결백하고 검소한 태도로 직무에 임했으며, 유교적 가치관과 천주교 신앙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을 지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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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천주교 입교와 선교 활동

 

남종삼 성인이 천주교에 입문한 배경에는 아버지 남상교의 신앙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이유일(李唯一)을 통해 교리를 배우며 정식으로 신앙을 받아들였고, 이후 프랑스 선교사 베르뇌(Berneux)와 다블뤼(Daveluy), 리델(Ridel) 등과 활발히 교류하였습니다. 특히 1861년에는 리델 신부에게 조선어를 가르치며 선교 활동을 지원하는 등 조선 내 교회 확장과 외국 선교사들의 적응을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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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방아책(防俄策)과 체포, 병인박해

 

1860년대 들어 조선은 국제 정세의 급격한 변화 속에 위기를 맞았습니다. 러시아가 만주 연해주 지역을 장악하고 두만강을 따라 남하하자, 남종삼 성인은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 홍봉주, 이유일 등과 함께 프랑스 및 영국과의 동맹을 제안하는 ‘방아책(防俄策)’을 흥선대원군에게 제출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책은 외국 세력과의 연계에 대한 불신과 반감으로 인해 오히려 천주교에 대한 박해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고,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그해 2월, 남종삼 성인은 경기도 고양군에 피신하였으나 2월 25일 체포되었습니다. 이후 국청에서 여섯 차례의 고문을 받으면서도 신앙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1866년 3월 7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당하며 순교했습니다. 향년 50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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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시복과 시성, 그리고 믿음의 유산

 

남종삼 성인은 1968년 10월 6일,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시성식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으로 시성되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현재 서울 마포구 절두산 순교성지에 안치되어 있으며, 해마다 9월 20일은 그의 축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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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늘날 남종삼 성인이 주는 의미

 

남종삼 성인의 삶은 단순한 순교의 이야기 그 이상입니다. 그는 정치, 교육,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선의 발전을 모색하면서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시대에도, 그는 신앙의 본질과 양심을 지키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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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남종삼 요한 성인은 정치와 신앙의 충돌이라는 어려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그의 생애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진정한 용기와 믿음이 무엇인지 되묻게 합니다. 그의 삶을 기억하고 기리는 것은 단지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 아니라, 신앙인의 길을 따르는 오늘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여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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