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알아본 사람들, 엠마오의 두 제자 이야기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는 날. 예루살렘에는 슬픔과 혼란이 가득했습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추종자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그중 두 사람은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라는 마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져 있었고, 그분이 정말로 부활하셨다는 소문조차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이들의 발걸음을 바꿀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는 단지 옛날의 한 사건이 아닙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주는, 신앙의 여정을 상징하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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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엠마오로 가는 길: 절망 속에서 떠난 여정
루카 복음 24장 13절부터 등장하는 이 두 제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그분을 따르던 열성적인 추종자였습니다. 이 중 한 사람은 **클레오파스(Cleopa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약 11km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성경은 이 마을의 위치를 정확히 밝히지 않지만, 중요한 건 이 여정이 '예루살렘에서 멀어지는 길', 즉 신앙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상징적 길이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부활의 소식을 들었지만 믿지 못했고, 실망과 슬픔 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떠나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신앙생활 속에서 예상치 못한 고통이나 절망을 겪을 때, 우리도 이들처럼 마음속 엠마오로 향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2. 동행하신 예수님, 그러나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두 제자가 걷고 있을 때, 한 낯선 이가 그들 곁에 다가와 함께 걷기 시작합니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왜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성경은 "그들의 눈이 가려져서 알아보지 못했다"(루카 24,16)고 말합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인 현상이 아니라, 신앙의 눈이 닫혀 있었음을 상징합니다. 마음이 절망에 가득 차 있으면, 우리는 곁에 계신 주님조차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질문하십니다. "무슨 일을 그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가고 있느냐?" 두 제자는 예수님의 죽음과 그 소문난 부활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워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구약 성경, 곧 모세오경과 예언자들의 글을 인용해 자신에 관한 말씀을 차근차근 풀어 설명해주십니다. 즉, 말씀 안에서 그분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계셨던 것입니다.
3. 빵을 떼실 때 비로소 눈이 열리다
해가 질 무렵, 엠마오에 도착한 제자들은 이 낯선 동행자에게 말합니다. "저녁이 가까워졌으니 우리와 함께 묵으십시오." 그렇게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축복하시고, 떼어 나눠주셨을 때, 제자들의 눈이 열려 그분이 누구신지를 깨닫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님은 사라지십니다.
이 장면은 너무나 상징적입니다. 말씀과 성찬의 자리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게 되는 것. 오늘날 우리가 미사 안에서 주님을 만나는 구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말씀 전례를 통해 마음이 뜨거워지고, 성찬례 안에서 그분을 알아보게 되는 체험—이것이 엠마오 사건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4. 다시 예루살렘으로! 공동체와 부활 신앙
예수님께서 사라진 뒤, 두 제자는 서로 말합니다. “그분이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에 우리의 마음이 뜨겁지 않았던가?” 그들은 곧장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 밤길을 되돌아가는 것은 위험하고 피곤한 일이지만, 그들의 마음엔 이제 기쁨과 확신이 가득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다른 제자들과 만나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게 됩니다. 엠마오로 떠났던 길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신앙의 회복 여정으로 완성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신앙에서 멀어질 때에도 주님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며, 말씀과 성찬을 통해 다시 우리를 공동체로, 부활의 확신으로 이끄신다는 깊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결론: 엠마오의 길, 우리 삶의 여정 안에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는 2천 년 전의 사건이지만, 지금도 살아 있는 우리 각자의 신앙 이야기입니다. 때로는 낙심하고, 기도에 응답이 없다고 느끼며, 외롭고 혼란스러운 길을 걷지만—그 길 위에서 주님은 조용히 동행하시고, 말씀을 들려주시며, 성찬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알아볼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오늘도 우리 삶의 엠마오 길 위에서, 말씀을 새롭게 듣고, 성찬 안에서 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는 체험이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