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하늘에 맡긴 아버지, 성 김제준 이냐시오 – 피로 피운 신앙의 유산
1. 솔뫼 마을의 어느 집 이야기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충청도 면천 솔뫼의 한 초가집. 작은 마당에는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고, 부엌에서는 연기가 솔솔 피어오릅니다. 이 집안은 대대로 믿음으로 살아온 집안이었죠. 세상은 가톨릭을 ‘사학’이라 부르며 박해하였지만, 이 집은 조부도, 숙부도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은 집안이었습니다.
그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김제준 이냐시오입니다. 1796년, 그는 박해의 공포 속에서도 천주를 향한 믿음을 가슴에 품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일찍이 가정을 이루고, 부인 고 우르술라와 함께 조용히 살며 농사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범한 농부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그를 불편하게 했고, 동시에 하늘로 이끌었습니다.
2. 마카오로 떠나는 아들, 눈물로 바치는 기도
1836년 어느 날, 낯선 서양인 신부가 은이 마을을 찾았습니다. 모방 신부였습니다. 그는 조선 땅에서 사제가 될 만한 소년들을 찾고 있었죠. 그리고 김제준의 15살 난 아들 김대건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이 아이는 사제가 될 자질이 있습니다. 마카오로 보내야 합니다.”
그 말을 들은 김제준의 마음은 갈라지는 듯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그것도 아직 어린 소년을… 멀고도 험한 바다 건너 외국으로 보낸다는 것은 자식을 두고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신앙 고백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결단했습니다.
“이 아이가 하느님의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이 내 기쁨입니다.”
아들이 떠나는 날, 김제준은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마당 끝까지 배웅했습니다. 부인의 손을 꼭 잡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기도했죠.
“주님, 이 아이를 맡겨드립니다. 제 자식이 아닌, 주님의 사제가 되게 하소서.”
3. 고통과 회한 속의 배교, 그러나...
1839년. 박해가 다시금 조선을 뒤덮었습니다. 기해박해였습니다.
김제준은 은신처를 옮기며 조심스럽게 신앙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끝내 배교자 김순성의 밀고로 체포되었습니다. 그가 아들을 외국으로 보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조정은 그를 중죄인으로 다뤘습니다.
포청에서 시작된 고문은 인간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손발이 찢기고, 등을 내리치는 곤장이 이어졌습니다. 고통 앞에 김제준은 무너졌습니다. 입으로는 “신앙을 버리겠다”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날 밤, 그는 아무 말 없이 감옥 한쪽에 앉아 있었습니다. 같은 감방의 늙은 신자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형제여, 당신의 믿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당신은 아들을 하느님께 바친 아버지가 아니었소?”
그 말에 김제준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떨궜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는 포졸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시 천주를 믿는다. 내 입으로 지은 죄를 회개한다. 형벌을 달게 받겠다.”
4. 서소문 밖, 하늘로 향한 걸음
형조의 판결은 빠르게 내려졌습니다. 사형. 참수.
1839년 9월 26일. 그는 죄인의 이름으로 서소문 밖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그곳은 이미 수많은 신자들의 피가 흐른 순교의 자리였습니다.
목에 끈이 묶이고, 무릎을 꿇은 채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여, 제 영혼을 받으소서. 제 아들을… 주님의 사제로 써주시니 감사합니다.”
검이 번쩍이며 그의 목을 스쳤고, 김제준은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그날, 하늘은 흐렸고,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는 굵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그의 죽음은 신앙의 씨앗이 되어 이 땅에 다시금 뿌려졌습니다.
5. 그 아버지의 아들, 김대건 안드레아
아버지가 순교하던 그 해, 아들 김대건은 마카오에서 사제로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3년 뒤, 그는 조선에 잠입해 신자들을 돌보며 사목하였습니다.
하지만 김대건 신부 역시 1846년, 아버지처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어 순교합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하느님께 드려진 생명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아들을 믿음으로 길러 하늘에 바쳤고, 또 다른 이는 그 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다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6. 그리고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
1925년, 교황 비오 11세는 김제준을 복자품에 올렸고,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성인으로 시성하였습니다. 그는 한국 천주교 103위 성인 중 한 분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이름이 오르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의 삶, 그의 결정, 그의 회개, 그의 눈물… 모든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믿음을 위해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성 김제준 이냐시오를 기억하며 방문할 수 있는 곳
- 은이성지: 김제준 성인이 신앙 공동체를 이끌던 곳
- 한덕골: 가족과 함께 피신했던 마을
- 서소문 순교성지: 그가 마지막 숨을 내쉰 순교의 자리
마무리하며
성 김제준 이냐시오. 그는 아버지였습니다. 사제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삶으로 한 사제를 길러낸 하느님의 도구였습니다. 박해 앞에 한 번은 흔들렸지만, 다시 일어나 끝까지 믿음을 지켰던 한 사람. 그의 인생은 단단한 바위처럼 오늘날 우리 믿음의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읽는 우리도, 작은 결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일상 속 작은 용기를 통해, 우리도 김제준 이냐시오처럼 누군가의 믿음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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