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스테파노, 피로 증언한 첫 순교자의 길
부활주간이 되면 매일 미사 독서로 사도행전이 낭독됩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이 초대 교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 복음의 씨앗이 어떻게 피와 희생 속에 자라났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입니다. 그 중심에 바로 ‘첫 순교자’ 성 스테파노가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다시금 묵상하며, 우리도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고자 합니다.
1. 초대 교회가 선택한 일곱 부제 중 가장 빛난 이
예루살렘 교회가 점점 성장하면서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헬레니스트 유다인, 즉 그리스 문화권에서 자라난 유다인 신자들이 자신들의 과부들이 일상적인 구제에서 소외된다고 불만을 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에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 선포에 집중하고, 실질적인 돌봄과 구제를 담당할 신뢰할 만한 사람 일곱 명을 세우기로 합니다.
사도행전 6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말에 온 회중이 찬성하였고, 그들은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인 스테파노와…”
그렇게 일곱 부제가 세워졌고, 그 가운데에서도 스테파노는 지혜와 믿음이 뛰어난 인물로 가장 주목받았습니다. 단순한 구제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라, 그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복음을 살아내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2. 복음을 외치다, 죽음을 맞이하다
성령이 충만했던 스테파노는 점차 말씀 선포에도 참여하게 되었고, 유다인 회당에서 여러 사람과 논쟁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지혜와 성령이 이끄는 말에 대적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일부 유다인들은 스테파노를 신성모독죄로 고소하고, 그를 산헤드린 앞에 세웁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긴 연설을 남깁니다(사도행전 7장). 내용은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를 되짚으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죽인 유다 백성의 완고함을 지적하는 매우 도전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산헤드린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스테파노는 예루살렘 성 밖으로 끌려나가 돌로 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때 스테파노는 하늘을 우러러 이렇게 말합니다.
“주 예수님, 제 영을 받아 주십시오.”
“주님,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이는 바로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남기신 마지막 말과도 닮아 있습니다. 그는 순교의 순간까지도 사랑과 용서의 자세로 일관하며,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였음을 보여줍니다.
3. 죽음을 목격한 사울, 그리고 교회의 눈물
스테파노의 순교 장면에서 특별한 인물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사울”입니다. 훗날 바오로 사도가 되는 이 사울은, 당시 열렬한 유다 율법주의자였으며, 스테파노를 죽이는 자들의 옷을 지키는 역할을 하며 그 처형을 옳다고 여겼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라, 훗날 하느님의 은총으로 회심하게 되는 사울에게 결정적인 전환점이 됩니다. 많은 신학자들은 스테파노의 기도,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라는 말이 사울의 회심을 위한 중재기도가 되었을 것이라고 묵상합니다.
스테파노의 죽음은 초대 교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많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로 인해 복음은 팔레스티나 전역은 물론, 더 넓은 헬레니즘 세계로 퍼져 나가는 계기가 됩니다. 그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4. 성 스테파노의 유산 – 순교자의 길은 사랑의 길
성 스테파노의 순교는 단순한 비극적인 죽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내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사랑의 증언’이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헬라어로 ‘스테파노스’, 즉 ‘왕관’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단지 명예로운 이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신 ‘승리의 면류관’을 상징합니다.
그의 축일은 12월 26일, 성탄 다음 날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탄의 기쁨이 곧 순교의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교회의 깊은 영적 통찰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한 다음 날,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준 사람을 기리는 것이지요.
오늘날도 성 스테파노는 석공, 제과사, 설교자, 변호사, 말더듬는 사람, 그리고 용서의 중재자로 많은 이들의 수호성인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마무리: 순교는 멀리 있지 않다
성 스테파노는 먼 옛날 사람 같지만, 우리 삶 속에도 그의 삶은 울림을 줍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인의 삶은 ‘증언’의 연속입니다. 진리를 말해야 할 때,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때, 또는 용서하기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작은 순교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성 스테파노처럼 두려움 없이, 사랑으로 진리를 증언할 수 있는 용기와 은총을 간구해봅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처럼, 세상을 향해 용서의 마음을 품을 수 있다면, 우리 역시 현대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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